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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단속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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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rina 2015. 6. 2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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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모임에서는 엄기호 <단속사회>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소통의 양상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이러한 소통은 어떤 맥락과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지를 저자의 강연과 상담과정에서 겪은 사례를 가지고 이야기합니다. 





두번째 모임에서 다루었던 '자기만의 방'은 고시원을 중심으로 청년세대의 주거불안을 그려내고 있는데요. 그 책에서는 당사자의 경험들을 주류 담론 속에서 배제하는 방식, 마치 불운한 개인의 처지나 노력을 통해 극복해야 할 젊은날의 낭만 같은 것으로 치부해선 안된다고 말합니다. 결국 당사자의 경험들을 사회 속에서 다시 맥락화해야 한다는 것이죠. 신선했던 것은 이 책이 고시원에 흘러들어간 청춘들의 비참한 삶에 관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집-가족'에 대해 한국 사회가 가지는 어떤 정상성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전복하고 재전유할 수 있는 지에 관해 다룹니다. 청년들이 고시원에 흘러들어오게 된 경험담, 부동산 시장에서 고시원이 가지고 있는 상품으로서의 집의 위치,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살며 느끼게 되는 해방감과 답답함 등을 가지고요.


그렇다면 연구자가 아닌 당사자들은 어떻게 모여서 개인적인 경험들을 공적 담론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엄기호는 소통을 바로 "사적 경험을 공적 담론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소통방식은 어떠한가요? 책 제목 단속사회에서 단속은 이중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검열이라는 의미로서 단속(團束; 통제하거나 보살핌)과 파편적인 소통이라는 의미로서 단속(斷續; 접속하거나 차단함)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서두에서 '곁을 두지 않는 사회', '곁은 없고 편만 남은 사회'라고 진단하면서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묻습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다양한 사례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는 상황과 유사합니다. 한 참가자가 말했던 경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은 마을에서 공론장을 활성화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그런데 참석한 사람들이 솔직한 토론을 하지 않는다는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간 자신의 기획력이 부족해서였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는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 책은 소통 부재, 혹은 파편화된 소통이 이루어지는 현상과 그 원인을 짚고 있습니다. 소비자본주의의 범람이 모든 인간관계를 계산가능한 관계로 치환하고 화폐를 소유한 자가 알량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회로 만들었고, 최근 불고 있는 자기계발 열풍에서 보는 것처럼 부족한 사회안정망과 저성장 시대에 개인에게 생존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면서 사회적 연대와 신뢰를 가로막고 있다고 합니다. 민주화 이전 '말' 자체가 불가능한 사회가 있었고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는 결국 대안도 '말걸기'일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말의 힘이 불신되는 사회이지만 성장은 타자와의 대면을 통해 상처를 입고 성찰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말을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험의 공유와 전승은 말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한 참가자가 경험했던 공론장 형성의 실패는 실패가 아닐 것입니다. 공론장은 물리적 공간에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정리된 안건을 던지면 찬성과 반대로 나뉘는 자판기가 아닙니다. 타자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말걸기를 통해 자신의 경험이 타자와 부딪히는 것, 모든 것이 흐릿한 시대에 타자를 자기검열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참조점으로 삼아야겠습니다.


p.s.

한가지 아쉬운 점은 제시된 텍스트를 완독하고 이야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이러저러한 바쁜 생활 속에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의 어려움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만큼 소모적인 일도 드물다는 생각입니다. 텍스트를 떠받드는 것을 경계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많은 경우 단행본 일독하지 못하고 만납니다. 완독(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비판적 의견을 낼 수 있는)까지도 바라지 않습니다. 책의 처음과 끝을 마주했다는 것은 저자의 주장이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는 지는 파악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간혹 책의 첫부분만 읽고와서 개인의 경험에, 그리고 어디서 줏어들은 이야기에 버무려서 2, 3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는 있습니다. 또는 자기는 관찰자로 위치짓고 제3의 장소에서 (이를테면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발생하는 현실들을 가져옵니다. 무의미하진 않고 의외의 성과를 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참가자가 토로한 부분이 바로 저자가 주장한 그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는 셈이죠. 이번에도 그랬습니다. 참가자가 소통의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은 대체 왜그럴까'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단속사회' 후반부에는 소통 불가, 소통 왜곡에 관한 구조적 제약 등이 서술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알고 왔다면 우리는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었겠죠. 아니면 저자의 주장과 상관없이 사고력을 발휘해 논의를 정리해 나갈 수도 있었을테구요. 하지만 그날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단계를 이어갈 수 없었고 결과적으로 개인 경험의 토로, '내'가 없는 소통 장소에 대한 묘사 밖에 되질 못했습니다. 참가자 개인의 경험이 저자의 경험과 이론적 정리를 만나고, 다른 참가자들과 깊게 이야기 할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책모임에서 조차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이 책이 짚고자했던 바로 소통 불능의 상황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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