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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다 타츠루, [하류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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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rina 2014. 2. 12.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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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이들이 왜 배움과 노동을 거부하는 지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한국의 언론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니트족(NEET族)의 등장을 분석하고 있다. 재출간 서문에서 저자가 밝히듯 이 책이 다시 출간되는 것도 한국의 어떤 현실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진단은 간단하다. 일본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일찌기 '소비주체'로서 자신을 자리매김 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가족이나 공동체, 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역할을 할 나이나 능력을 갖고서 참여를 해야만 한다. 그 자격을 갖추기까지 양육되고, 교육을 통해 어디에 써먹을 지도 모르는 지식과 예절을 배운다. 때로는 정해진 매뉴얼이 있을 수도 있고 우연적 경험에 따라 학습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아이들은 가족의 구성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훈육되고, 노동하는 주체가 된다. 


어떤 면에서는 이는 억압적 규율을 내면화하는 과정이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적어도 근대 국민국가가 이루어 놓은 성취들이 해체되고 있는 상황을 걱정하는 글을 보면서 내가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하는 걸지도. 공교육 현장이 무너진다는 소리는 단순히 사교육 시장이 확대되는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현장 자체가 바로 '소비 주체'를 키워내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무튼 아이들이 일찌기 '소비주체'로 등장하는 경험을 한다는 말은 이렇다. 과거에 아이들이 사회 관계를 경험하는 과정이 어른들의 심부름이나 가사를 도우면서 받는 칭찬이었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화페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기 산업화 시대에서 화폐를 들고 있는 사람은 남녀노소 아무런 구분이 없이 그저 '고객님'이 된다. 이 경험을 일찍부터 한 아이들은 모든 것을 등가 교환의 원칙, 효용의 원칙으로 본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내가 왜 이것을 배워야 하죠?'라는 질문은 교육 소비자로서 정체성을 드러내는 질문이다. 


그럼 이 질문에 선생이나 부모가 '이러저러한 효용이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해'라고 말해야 할까. 기본적으로 저자는 배움이란 주체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모국어를 습득하는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그것을 통해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배움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순간, 배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봉쇄 당한다. 


두번째로, 이 '소비주체'를 낳은 체제는 다시 사회적 계층이 낮은 아이들이 노력을 통해 처지를 극복할 수 있는 확률을 낮추어 버렸다. 흔히 말하는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도 더이상 대학 졸업장이 안정된 직장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동시에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떠맡겨져 있는 곳이 되었다. 이런 노력에 따른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리스크 사회에서 대개의 하층은 '리스크 테이킹'할 여력을 갖추지 못하고 연대를 통한 '리스크 헤징'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개인이 모든 리스크를 감당해야만 하는 곳-다시 말해 리스크 헤징이 봉쇄된 곳에서는 하위 계층의 노력 거부가 일어나게 된다. 이런 노력 거부가 학교 교육에서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는 풍토와 맞물리면서 공부를 하지 않는게 마치 인간성의 완성인 것처럼 자부심을 가지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저런 '노력 거부' 상황이 특정 사회 맥락에서는 '리스크 헤징'의 한 양상이기도 했다는 걸 어디서 본적이 있어서다. 이를테면 영국 노동 계급의 자녀들이 공교육을 조롱하고 거부하는 방식을 통해 자본주의 국가 체계의 규율에 도전하는 자신들만의 연대의식을 학습해왔다는 해석 등. 그가 책에서 유럽형 니트라고 말할 때도 분명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니트는 계층 상승이 실제적으로 봉쇄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고, 일본의 니트는 실질적으로 아직 계층 상승이 가능한 비교적 동질적인 사회임에도 학습과 노동을 거부한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대개의 니트 족들이 은둔형 외톨이의 길을 가는 것처럼 묘사하다가도 어느 순간 주체적으로 학력저하를 선택하고 그것을 마치 자랑스러운 것으로 간주하는 행태를 언급해서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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