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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rina 2013. 6. 25.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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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www.guardian.co.uk



만일 내가 속한 공동체가 무너져내리는 것을 보고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어떤 것일까요?  내 손엔 이 공동체를 건져낼 기술 한 가지는 있는데 이 수단을 극단으로 밀어붙이니 일정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 성과가 과연 체계 내에서 얼마나 지속 가능한 것일까요. 도덕과 합법의 영역을 넘나드는 기술관료적 합리성은 원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체계의 헐거운 틈에서 약간의 윤리를 가진 나는 이 기술을 사용해 쇠락하는 공동체의 한 부문을 구하고자 합니다.


HBO의 드라마 <THE WIRE>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총 5개 시즌 중에 4개 밖에 보질 못했지만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요소가 많은 것 같아요. 많은 범죄 수사물이 강력 사건 하나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에서 피해자와 그 주변 인물들의 갈등을 에피소드 별로 보여주는 방식이라면, 이 드라마에서는 시즌 초입에 살인 사건이 등장하지만 매우 간단히 해결되거나, 무시되곤 합니다. 정작 드라마는 이 사건을 가지고 지역 커뮤니티와 경찰 시스템, 정치인들을 엮어 냅니다.


 살인 사건이 나고 말단 형사들은 수사를 하지만 곧 벽에 부딪힙니다. 승진을 위한 실적이 아니라면 길거리에서의 마약거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인 사건은 적당한 용의자를 검거해 검찰로 넘기는 풍토가 일반화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무사안일한 경찰 조직 내에 악동처럼 소란을 피우면서 묻혀버릴 사건을 발굴해 내는 형사, 머리가 나빠 늘 제리를 쫓는 톰처럼 허술한 형사, 사고뭉치지만 장인 어른이 간부라 버티고 있는 낙하산, 출세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연줄에 목을 메지 않는 반장 등이 모여 진짜 수사를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이 팀은 처음부터 호흡이 잘 맞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수사 기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범죄 조직의 윤곽은 잘 잡히지 않습니다. 비효율적 관료조직과 정치를 하는 간부들 덕택에 이게 범죄와의 전쟁인지, 관료와의 전쟁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영장 발부 받으려고 문서 작업하는 시간에 조직은 이미 도망가 버립니다.)


1시즌에서 볼티모어 마피아의 2인자 스트링어 벨은 마약거래와 살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MBA 수업을 듣습니다.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삐삐와 공중전화를 이용하는데, 이것이야 말로 '적정 기술'에 아이디어를 더한 혁신 사업인 것입니다. 이렇게 마약조직의 수뇌부를 철저히 감추며, 불필요한 폭력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지역 마약조직들의 카르텔을 구성하고 '시장 관리'를 합니다. 


2시즌에선 쇠락해가는 항만 노조를 부여잡기 위한 노조 위원장의 눈물 겨운 사투가 벌어지는데요. 폴란드계 노동자인 프랭크 소보카는 자동화된 컨테이너 물동 시스템에 노동자들의 일거리가 점점 줄어들자 밀수에 손을 댑니다. 항만 노동자들에게 컨테이너 몇 개쯤 빼돌리는 것은 일도 아닌 것이었죠. 이렇게 빼돌린 컨테이너에는 슬라브계 범죄조직을 위한 마약 제조용 화학 물질과 취업을 위해 밀입국하는(사실은 마피아들에 의해 성매매를 강요당하게 될) 여성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조 위원장의 양심은 조카 세대 뻘 항만 노동자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비타협적 투쟁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신의 형 앞에서 한가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밀수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일거릴 찾지 못하는 노조원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거나, 물동량을 자신의 항구로 돌리기 위한 로비, 운하 건설을 위한 환경 영향 평가 등 커뮤니티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일에 쓰입니다. 


3시즌에선 지역 경찰 간부가 벌이는 '마약 합법화 지구' 사업이 주된 내용입니다. 일명 '햄스테르담'이라는 곳에 동네 마약 조직들을 죄다 몰아 넣고 주거 지역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제 마을은 활기가 넘치고 치안을 위한 인력 운용도 수월해집니다. 길거리의 아이들도 더이상 망을 보지 않아도 됐고, 마약 조직들 간의 영역 싸움도 사라지고, 마약을 숨기고 유통시키는 조직이 간소해지니 이윤도 많이 남습니다. 한 형사는 이 돈의 일부를 '실업자'가 된 아이들에게 줍니다. 그걸 지켜보던 동료 형사는 "네가 무슨 공산주의자라도 되냐"고 핀잔을 줄 정도 입니다. 


이 커뮤니티를 유지하려는 노력들이 어떻게 시작되고 좌절되는 지가 '범죄 수사물'을 표방하는 드라마에 주된 내용입니다. 4시즌을 보는 중이고, 여기선 교육 제도 문제가 다루어지지만 각 시즌이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는 적지 않을 생각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린대로 한 개인의 체계 내에 균열을 내려는 의도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 개인이 시도하는 기술관료적 수단들이 일정한 성과를 낼 때, 사회민주적 개혁이 이런 방식이겠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것이 왜, 어떻게 좌절되는지는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저 범법 행위였기 때문에 가로막힌 것일 수도 있고, 관료체계의 비효율성 속에 사산되어 버릴 운명이었던 것일 수도 있으며, 커뮤니티 구성원과 결합되지 않는(대중운동 없는 수동혁명으로써) 개혁의 시도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 실패 속에 남은 유산은 무엇인지도 각자가 생각해볼 부분도 있는 것 같구요. 


아무튼 장르 재미보다 묘사되는 사회현실이 더 흥미진진한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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