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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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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rina 2013. 6. 13.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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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을 봤습니다. 재미있었어요. 같은 채널에서 작년에 방영했던 <응답하라 1997>이 '우리의 팬질은 당신의 팬질보다 아름다웠다'고 말하며 과거를 호출했다면, 이 드라마는 '잃어버린 20년'을 바꾸기 위해 직접 뛰어듭니다.

 평론가 허지웅은 이 드라마가 <나비효과>의 이야기에 <24>의 구성을 참조한 것 같은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하더군요. 과거로 돌아가 사건의 방향을 바꾸자마자 20년 후의 상황은 의지를 배반합니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 딱 30분의 향이 타는 시간을 마치 <24> 의 화면처럼 병렬 배치하는데요. 그 긴장감이  쫀쫀합니다.

 저는 이 드라마가 <나비효과>에서 한 발 더 나갔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의 의지를 배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주인공이 스쳤던 과거 속 인물들이 의지를 갖는다는 점이 확연한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듯 과거를 덧칠 하려고 했지만, 정작 세상은 수채화였던 것이죠. 거기다 시간 여행을 한 번씩 할 때마다 과거의 인물들이 의지를 가지고 붓을 듭니다. 

 주인공의 절친이 말하는 것처럼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그 물건은 '선악과'의 저주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저주는 그것으로 인해 악이 창궐하는 것도 아니고, 선과 악이 분명한 대립을 드러내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최 원장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라 생각하고 과거로 떠나지만 선과 악은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차라리 여기서 시간여행이라는 선악과는 선을 구현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악, 과학이라 보는게 적당할 것 같습니다. 향을 사용하고자 할 때, 주인공을 비롯한 사용자는 특정한 가정과 그것에 기반한 해결책을 가지고 시간여행을 하기 때문이지요. 시간 여행자의 의지는 성공하는 듯 싶다가도 번번히 배반당합니다. 세상이 수채화 같은 복잡계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분석와 피분석자가 상호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과학의 분석이 끝나는 곳, 혹은 어긋나는 곳에서 인물들의 의지가 사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종국에 시간여행을 더이상 하지 못하게 됐을 때도 과거를 살아가는 인간의 의지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다시 드라마 밖 현실로 돌아와서 이런 질문을 던져봅니다. '잃어버린 20년'을 되돌리기 위해 우리는 몇 개의 향과 몇 개의 의지를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의 브금은 '비오는 날의 수채화'가 적당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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