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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과 법의 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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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rina 2013. 2. 26. 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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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오늘 김두식 교수의 <불멸의 신성가족>과 아담 쉐보르스키 교수 등이 엮고, 최장집 교수가 한국어 판 서문을 쓴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라는 책이 눈에 뜨였다. 

 

불멸의 신성가족 - 8점
김두식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불멸의 신성가족>은 한국 법조인들과 법조 사회의 관행들을 여러 관계자(법원,검찰 등의 사무직원, 피고소/고발인 등)를 인터뷰해서 에세이 처럼 풀어쓴 것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전, 현직 검사, 판사들 또한 가명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맑스•엥겔스가 청년헤겔파를 비판하면서 사용한 '신성가족'이라 표현을 가져왔지만, 법관, 검사, 변호사들의 기득권 카르텔을 꽤 담담하게 풀어 내고 있다. 일각의-특히 웹 상의 댓글이나 SNS 상의-권력의 시녀라는 식의 비분강개한 표현과는 달리, 민주화 이후 정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사법부가 왜 권위주의 시절에 남아 있던 관행들을 아직도 근절하지 못했는가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리고 인터뷰는 그러한 관행들이 상당히 줄었다는 법조인들의 진술과 여전히 촌지와 전관예우 등이 횡행한다는 법조계 주변의 증언들을 대비시키고 있다. 여기에는 일부 정치적 사건들-이면에 권력을 두고 다투는- 뿐만 아니라 민사사건 등도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권력과 법조 엘리트간의 카르텔-만약 존재한다면-이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법조계 밖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왜 이렇게 그 안의 사람들과 차이가 나는가다. 



 한편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는, 법의지배가 기초하고 있는 원리와 민주주의가 기초하고 있는 원리가 다름에서 나타나는 긴장을 보여주고,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의회의 약화와 행정부의 비대화 현상이 삼권분립에서 지향하는 정부 기구간의 수평적 책임성을 어떻게 약화시키는 지를 보여주는 이론서이다.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 - 8점
아담 쉐보르스키 외 지음, 강중기 외 옮김/후마니타스


아직 다 읽진 않았는데 최교수님의 서문에서 마키아벨리를 인용한 대목이 오늘에도 시의적이라 생각된다.

"군주는 자비로운 선물은 직접 나누어주고, 부담을 지는 책임은 다른 사람들이 지게 해야 한다. "


  여기서 정부의 수평적 책임성(삼권분립)은 통치의 유용성을 담보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통치자가 사법권을 내려 놓는 이유가 사법행위의 결과는 늘 한 쪽 세력의 불만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와 구분되는 사법부라는 아이디어는 바로 견제와 균형을 통해 어느 한 분파가 통치기구를 장악하는 것을 막는 의미도 있지만, 이렇게 지배집단들이 스스로의 권력의 일부를 떼어 줌으로써 인민의 원망이나 반대파의 원한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도 있다. 게다가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국가들에서 사법부는 인민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지지 않기에 더욱 효과적인 방패막이가 되는 것이다. 이들이 만일, 업무의 전문성을 차지하고라도, 시민에 의해 선출이 된다면 적어도 권위주의 시대에서 자유주의 시대로 변화와 같은 사회변화에 뒤떨어지는 판결은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이 부분은 책의 1장에서 '법의 지배의 계보'라는 주제로 '왜 통치자는 법의 지배에 동의하는가', 그리고 '왜 한번 법의 지배를 받아들인 통치자 혹은 일부 통치세력이 법의 구속을 벗어나 자의적으로 권력행사를 하지 않는가'라는 두 가지 고전적 질문을 다루는 가운데 다시 나온다. 엮은이의 서론에도 언급이 되며, 한국어판 서문에도 인용이 될 만큼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부분인 셈이다. 꽤 두꺼운 이 정치학 교과서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이렇다. 사법부는 권력의 시녀가 아니라  자신의 제도적 이익을 갖는다. 행정부 조직이 비대하다고 해서 사법부에 대한 지배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비대한 행정부 내 법무부와 검찰청은 집권 여당과 대통령의 이익과 충돌하거나 상이할 수도 있다. 그럼 반대로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인사권은 사법부에 대한 강한 견제로 나타날 수 있을까. 우선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인사권이 바로 권력의 시녀니 어쩌니 하는 의심의 근거가 되는 부분인만큼 상당히 강력한 고삐지만 그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은 주기적 선거로 교체가 되지만 법관 임기는 종신이며 검사 임기는 안정적이다. 따라서 진보적 행정부가 탄생하든 보수적 행정부가 들어서든 그 효과는 즉시 나타나기 어렵다. 이런 제도변화의 더딤을 노골적으로 의도했던 사람중의 하나가 미국연방헌법을 기초한 제임스 매디슨이다. 헌법의 목적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에도 있지만 이렇게 제도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데에도 있다. 결국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가 정상화되어야 사법부도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책임의 소재가 사법부가 아니라 정치권 자신에게 돌아가는 다소 황당한 결론도 유추해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노회찬 의원의 유죄 판결도 그렇다. 사람들은 재판부의 황당한 법리해석에 분해 하면서도 노회찬 의원이 밝히려 했던 내용(더 나아가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도 다룰 수 있겠지)은 별 주목하지 않는다. 노회찬을 사면 복권해야할 사람들도 정치인들이고, 의원직 상실로 재보궐 선거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도 정치인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행정부와 여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었지만 검찰의 기소를 막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행정부는 떡값을 받은 검사들을 불기소한 황교안 검사를 법무장관으로 지명했다. 여야 의원 152명이  4일에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는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제출하고 대법원에도 선고연기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때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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