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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혹은 아님)'에 대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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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rina 2014. 8. 10.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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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안의 작가 vs. 극 밖의 작가

극의 시작과 끝은 작가와 부인의 대화로 구성된 막이다. 1장 1막, 작가는 오랜 기간 슬럼프에 빠져있다 죽음의 순간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소년의 이야기를 부인에게 들려주지만 그 순간 심장을 움켜지며 쓰러진다. 2막부터 계속 그런 하찮은 죽음은 계속 보여진다. 그런데 이 죽음들은 서로 관계없는 죽음의 연쇄다. 관객들은 그저 우스꽝스러움이 더해지거나 아무런 가치도 가지지 못하는 죽음들을 하나씩 목격하게 될 뿐이다. 그렇게 관객들은 자연스레 1장의 7개 막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서로 무관한 이야기들의 나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1막 7장에서 2막 1장으로 넘어가면서 우리는 동일한 배경에 같은 인물들이 외롭고, 무가치하고, 우스꽝스런 죽음을 맞이하는게 아니라 어떤 우연으로 죽음을 모면하게 되는 걸 알게 된다. 그 우연은 바로 직전의 장소에서 죽음을 모면한 사람의 등장으로 인한 것이다. 이렇게 서로 유관한 '아님'의 연쇄를 지켜보며 관객은 비로소 죽음과 아님의 사이에 어떤 따뜻한 개입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1장에서 각각의 막이 서로 이어지지 않는 이야기의 나열이었다면 2장에서는 각각의 막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사람들이 다음 막에 등장하면서 '아님'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그 아님의 연쇄가 2막의 끝, 곧 1막을 열었던 공간이기도 했던 작가와 부인의 대화 장면에서는 이런 우연한 개입은 이어지지 않는다. 1막에서 각각의 장이 서로 개별적인 이야기의 나열을 의도한데 반해 2막은 '아님'의 연쇄작용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2막 마지막 장면에서 그런 개입이 없다.

 이는 우리가 보고 있는 극의 전체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1막의 끝과 2막의 시작인 청부살인업자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가보자. 청부업자가 살인을 한 직후에 반복되는 장면에서 살인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신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떤 인물들의 우연한 개입이 아니라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목소리인 것이다. 바로 1막 1장에서 작가가 장황하게 설명했던, 죽음을 앞둔 소년에게 당장의 죽음과 고통스런 삶을 지속한 이후의 죽음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할 건지 묻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작가는 전지전능한 신이 되어 삶과 죽음을 주관하고 있다. 그렇게 이 작품 속의 작가는 작품 바깥의 작가(원작자, 연출가 그리고 관객)를 환기 시킨다. 우리는 신에게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가 부인에게 비난을 받은 바로 그 이유처럼 죽음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고 말할 수 있나? 관객은 기껏해야 이 극을 다 보고나서, 특히 마지막 장면을 통해 원작자와 연출가 그리고 자신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뿐이다. 신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원작을 쓴 세르지 벨벨은 이런 장치로 '죽음'과 '아님'의 차이가 (작품 속에서)그리 멀지 않은, 따라서 의미없는 죽음들을 사람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할 뿐만 아니라 (작품 밖에서) '죽음'의 반대가 생명이나 삶이 아니라 '아님'의 지속, 곧 극중 마지막 대사처럼 '영원한 어둠'일지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후자에서는 '죽음'과 '아님'이 동의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건 어쩌면 작가 스스로 그런 신의 목소리를 흉내낸다고 사회에 만연한 의미없는 죽음을 막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신적 의지의 개입으로-이것을 부인은 비난했지만- 고독한 죽음을 방지하는 따뜻한 개입-이것은 부인은 긍정한다-이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면서 부인의 비난 속에 있는 부조리함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은 극단 청우의 인큐베이팅 프로젝트 두번째 공연이다. 서술했듯 이 작품에서 1막1장과 7장, 2막 1장과 7장은 중요하다. 그런데 1막 7장과 2막 1장의 장면은 정교하게 짜여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신의 개입으로 청부업자가 살의를 거두는 장면이 잘 표현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청부업자로부터 살아 남은 자가 전화를 받는 것도 마지막 장면에서 부인의 독백을 염두에둔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 행위가 청부업자의 실패를 가져오거나 다음 장소로 이어져 다른 이의 죽음을 막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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