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8일 기획회의가 있었습니다. 말은 거창한 감이 있지만 어쨌든 올해를 어떻게 예쁘게 놀아볼까 고민하는 차원에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죠. 사정상 당장 함께 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많이 보고 싶으면서도 돌아올 시간까지 잘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기획회의라니 지난 해 우리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각자의 말들을 모아 하나의 글처럼 썼습니다. 문장 하나 하나 보면서 '이건 누구 생각이겠군' 하며 추리해보시길.
다청의 의미
어느새 친구들보다 더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된 우리들. 그것은 목적 없는 모임과 관계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야기 중에는 다른 사교 모임이나 취미 모임에서는 자신이 가진 장비를 경쟁적으로 과시하고 인맥 쌓기와 같은 목적으로 관계가 건전하지 못한 곳이 많다고도 했습니다.
처음에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일 때만 해도 조금 걱정했습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단체로 만난다는 게 늘 그렇게 어색한 일이니까요. 막연히 내가 사는 동네에서 아직 모르는 장소들에 대한 기대 때문에 모임을 신청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누구는 친구(보단 애인?)를 사귀고 싶다고 했고요.
나이가 들면서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취직을 하면서 살던 동네를 떠나는 경우를 보게 되고, 이런 친구들과 연락도 점차 줄어들게 됩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그 친구들과 이 동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닙니다. 대개 친구들을 만나도 시내의 핫 플레이스 등에서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집니다. 직장과 학교의 출퇴근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은 학교나 직장이 있는 곳이지 우리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설령 학교와 직장이 사는 곳 근처라고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일과 학업에 열중하고 정해진 코스를 순환하다 보면 내 주변의 환경을 낯설게 보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다청을 함께 하며 반복되는 일상에서 쉬어가는 계기를 만들고 더불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놀 만한 곳이 많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는 미삼에는 술집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맛집이나 갈만한 카페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곳은 사람들이 애써 찾아가지 않으면 모르는 곳이기도 하고, 간혹 지나가다 들어가 볼까 생각은 들었지만 혼자서 이용하기에는 망설여졌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렇게 미삼에 대한 편견들이 상권을 술집으로 단순화시키고, 다양한 즐길 거리들을 제공하는 가게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겠죠. 그 이야기는 한옥집 맞은 편에 있는 라면 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말을 들으며 정점에 달했습니다. (사실 난 거기 아직 가보지도 못했는데 ㅜㅜ)
어떻게 이런 지역 상권의 다양성을 보존할 수 있을 지 이야기한 것을 보면 반년 간의 다청 활동에서 변화한 것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모이게 된 조건들, 상황들은 다 달랐을 겁니다. 각자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다 담을 수는 없고 그걸 표현할 능력도 안되지만 공통의 키워드는 외로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우리가 사진을 찍으러 모였지만 사진은 뒷전이었다는 사실. 그러면서 동네를 새롭게 보게 되고, 우리 주변을 둘러싼 환경들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지 않았나 합니다. 그 관심이 이렇게 한 해를 돌아보고 올해 다시 무언가를 준비하는 자리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임이 지속 가능할 계기를 찾고 싶다.
우리가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는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지난 연말부터 이야기는 계속 초점 없이 겉돌았고 작년처럼 지자체 보조금 공고가 날 때까지 핵심적인 이야기는 미루었습니다. 그 겉돈 시간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을에 있었던 전시 준비에 많은 힘과 집중력을 쏟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도 있었고요. 겨울 초입에는 모든 멤버는 아니었지만 엠티도 다녀왔습니다.
모임의 마중물 역할을 했던 ‘우리마을프로젝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서는 여기에 20, 30대 친구들이 신청한 경우는 드물었다고 합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지원금을 줬던 기관 입장에서는 우리 모임이 예상치 못한 성공 사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모임을 구성하던 친구들이 사업 신청을 해서 어떤 결과물을 낸 것이 아니라, 사업을 통해 모임이 구성된 경우이니까요. 대개는 이런 사업이 끝나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들 중 형편이 되는 몇 명은 이 모임을 이어가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부의 시각이 어쨌건 간에 우리 모임의 멤버들이 무엇을 느끼고 나누었는 지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개방성과 멤버십
어느 모임이던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일을 벌이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말이죠. 단순 친목을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일 년이 지나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 이야기는 다음 사람이 합류하게 되었을 때 안내해야 할 습관이 됩니다. 그리고 기존에 같이 했던 사람들도 상황에 따라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때도 있습니다. 친구들이 돌아올 자리를 마련해 놓고자 하는 것도 일종의 의도겠지요.
폐쇄적이지 않으면서도 멤버십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흥미와 재미로 사람들을 모으면서도 동의할 만한 활동과 가치를 기획해야 합니다. 지난 활동에서 사진을 찍고,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수다를 떠는 시기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시회를 앞두고 기획 회의와 사진 선정, 제작 작업을 하는 동안 스트레스 또한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이것이 지자체 보조금 사업 때문에 생긴 일정의 빡빡함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 사업을 신청한 친구의 계획에는 1회 전시가 예정되어 있었고 다른 이들은 그걸 사전에 알지 못하고 모였지만, 활동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사진전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보조금을 타는 것은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어도 비용이 들까봐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나서게 하는 측면도 있어서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것은 멤버들 간 회비를 걷어서 사용하는 것이고, 수익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지자체에 보조금을 타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는 것이나, 자체 회비를 걷어서 운영비로 쓰자는 것이나 결국 같은 문제에 부딪힙니다. 그건 모임의 의도, 계획이 얼마만큼의 동의를 거친 것이냐 일 것입니다.
그리고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친목과 사업 간의 불균형에 대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사진을 찍고 선별을 하는 작업을 조금 미리 해 놓았더라면 막판에 그리 힘들지 않았을 거라는 말이지요. 그리고 사업을 주도하고 이끈 친구가 혼자서 너무 과중한 책임을 떠맡았다는 평가도 나왔습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새로 하게 될 사업에서 큰 걱정이 아니라는 평가도 함께 나왔습니다. 이제는 준비 단계부터 함께하는 사람들이 생겼으니까요. 몇가지 문제들은 해결되어 가는 것 같은데 아직 감은 안 옵니다. 여기까지는 자연스러웠던 것 같은데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질문은 반복됩니다. ‘다시없을 청춘에게'는 나에게 무엇이었고, 우리에게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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